나무 목의 인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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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육아 고찰 /엄마, 모두가 처음

여러모로, 대성통곡.

영화로운 나무 2018. 11. 18. 10:12

아이가 2살 때까지 독박육아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남편이, 친정 어머니가, 언니가 많이 도와주었다. 

3살이 되던 해 타국으로 나와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 독박육아가 시작되었다. 

그리 완전한 독박도 아니었던 게 남편이 공부하러 온 것이어서 학생의 신분인지라 수업이 없을 때는 육아를 했다. 어떤 날은 나보다 더 많이.

그래서 내가 독박육아를 했을 때는 단연코 남편의 시험기간, 논문 마무리 기간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독박은 독박인지라 힘들 때가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그 잠깐이 생리기간의 우울감과 변덕스럽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짜증, 저조하다 못해 저질스러운 체력 상태 및 엉망진창인 영국의 겨울날씨와 적절히 어우러지면 세상 이보다 더 힘든 고난이 없다. 


그날도 어김없이 우중충한 날이었다. 영국에 사는 동안 항상 생각했던 건 '생각보다 비 많이 안오네' 였지만 그렇다고 겨울이 화창한 건 절대 아니다. 해가 극도로 빨리 지고 떠있는 시간에도 해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한국과 비교해서는 그리 낮은 온도도 아니지만 괜히 나가 놀기 귀찮은 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에서 노는 시간이 더 많아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와 계속해서 집에서 노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체력이 남아도는 아이와 집에서 하루종일 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은 밖에 나가는 게 더 일 아니냐고 하겠지만 집에 있는 것이 더 힘들 때가 있다. 많다. 하지만 괜찮다. 나가서 신나게 놀면 되니까. 

문제는 그날 날씨가 아주 가관이었다. 비바람도 그런 드러운 비바람이 없었다. 이게 태풍이라면 태풍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근데 이런 날 나는 왜 여기까지 나온 거지. 목적지가 뚜렷해서일까 그게 그렇게 크게 후회되진 않았다. 


목적지는 자주 가던 시내 박물관. 

내가 그때 지내던 도시의 박물관에는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놀이방같은 코너가 한켠에 마련되어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는 꽤 많은 계단이 있고 옆쪽으로 기다란 경사가 있어 유아차로 올라갈 수 있다. 

도대체 왜 지상을 입구로 하지 않은걸까. 그 경사를 비바람을 뚫고 유아차를 밀어 밀어 올라가려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평소에는 운동삼아 힘차게 올라가던 경사가, 날이 좋으면 아이보고 잠깐 내려 걸어가자고 하고 편하게 올라갔던 그 경사가 그날따라 너무 길고 높고 멀었다. 비단 비바람 때문은 아니었다. 눈이 앞을 가리는 게 굉장히 불편하고 짜증나긴 했지만 내 몸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그냥 힘이 나질 않았다. 온몸이 축 쳐지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허리도 아팠다. 하지만 그런 나는 이걸 밀고 올라가야만 했다. 눈물이 찔끔 나기 시작했다. 근데 그랬다고 뭐가 달라지나. 힘들여 시간들여 집에서 나와 여기까지 왔는데 입구까지 와서 뭐 다시 돌아가기라도 할 것인가. 다시금 힘을 내서 올라가려는데 마치 그날을 영화로 치자면 클라이막스 장면인 것 마냥 힘찬 바람이 유아차 덮개의 일부를 걷어내고 걸어놓았던 내 짐의 일부를 날려버렸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끼우고 주워야 했고 주으면서도 유아차를 다른 한 손으로 꼭 붙잡고 있어야 했다. 불안해진 아이는 찡찡대며 나오려 하기 시작했고 아직 모든 짐들을 다 줍고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한 그 순간 순간, 모든 순간의 끝까지 바람은 계속해서 불었다. 나는 더이상 이 모든 혼돈의 버무림을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울음이 터졌다. 아이가 듣지 않게 음소거로 울을까 잠깐 고민이나 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가 억수로 많이 내리는 데다가 바람까지 부니 그 시끄러움에 내 울음소리가 묻힐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비가 모든 것을 적시는 게 어찌나 서럽던지. 또 바람이 그렇게 불편하고 원망스러웠던 적도 없을 것이다. 내가 꼭 뭔가 잘못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열심히 여기까지 온 나한테 이런 시련을 줄 수는 없다. 그래 나는 또 그렇게 은근히 내 탓을 하면서 더 고통스러워지고 있었다. 내 힘없는 몸도 나약해진 정신 상태도 서러웠다. 불쌍하게 유아차를 붙잡은 채로 쪼그려 앉아 대성통곡 울부 짖고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서러웠다.    

웃긴 건 그렇게 펑펑 울고 나서 할 수 있는 게, 해야 하는 게 딱 한 가지라는 것이다. 다른 선택권 따위는 없다.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 뭐 누구나 시련을 겪고 나서도 제 할 일을 하러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건 똑같지만 육아에는 그 중간에 마음을 추스리는 시간이 거의 없다. 하긴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는 점은 그 마음을 추스리는 시간을 질질 끌지는 못한다는 점, 아이를 보다보면 아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극복이 되곤 한다는 점이다. 물론 위험하게 우울증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육아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없다. 내가 열심히 했다고 정확히 그것에 비례해서 결과가 나와주는 것도 아니다. 노력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육아는 이긴다. 당최 어디로 어떻게 튈 지 모르는 게 아이고 육아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고 싶지도 않은 게 육아다. 솔직해지자.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긴 있다. 순간이긴 해도 여러번의 고비가 없을 순 없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건 내가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아빠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지게 노력해도 육아의 결과는 채점할 수 없고 또 드럽게 잘 안따라주지만 그래도 열심히 끈기있게 한 생명을 보호하고 지탱하고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라는 이름의 한 인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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