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목의 인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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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자아자아

영화로운 나무 2016. 1. 2. 01:58
자아라는 건 
쉽게 말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임은 아닐텐데 
새해를 맞이하여 
나만 너무 생각하다 '자아폭발'을 자행하셨으니 
너무나 부끄러운 마음 감출길이 없어 
반성의 의미로 
엊그제 시작한 티스토리에 끄적여 본다. 

사실 
온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인데. 

그 온가족은 꿀잠을 주무시고 
나홀로 카운트를 세는 티비를 들여다보는데 
그냥 먼가 쓸쓸했다. 

'나'라는 틀 안에 갇혀 
'나'를 위한 것들만 생각하다 보니 
쓸쓸하다는 게 외롭다기보다는 
내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함에서 오는 
씁쓸함이었다. 
 
나는 지금 친정집에 와있다. 
아직도 내입으로는 그렇게 말하기 참 어색해서
친정이란 말을 잘 쓰진 않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용어가 한 사람의 상태를, 상황을 
다른 이에게 설명함에 있어서 
그 복잡하고 미묘하기도 한 느낌들, 뉘앙스들을 
가장 분명하게 전달해주기 때문에. 

암튼 '집'에 있다보면 
우리 가족들은 너무 착해서 
나를 너무나 잘 도와주고 
즉, 일을 너무나 많이 하고
나는 점차 해야할 일에서 뒤쳐지다 
잠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상전이 된다. 

상전이 된 나는 
나를 위해 일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죄책감을 핑계 삼아 
'나'라는 틀 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우습게도 
'나'라는 틀은 결국 
'우리'라는 틀 안에 혹은 같이 있기 마련인데 
왜 나는 친정에만 오면 
'나'라는 틀을 
발전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후퇴시켜버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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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그래 언제나처럼. 

새해에 
하고 싶은 일들을 또 한번 써내려가볼까? 
해야 할 일들을 또 한번 써내려가볼까?
진부한 생각도 또 한번 해보고  
그럼 이번엔 할 것만 같은 일들을 써보는 건 어떨까?
나름 신선하다 싶은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큰 틀은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끄적이기로 한다. 

나는 결국 새해맞이를 
잠에 허덕이다 끝내버렸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음에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도와주는 가족들에게 
왜 더 잘 도와주지 못하냐고, 
그마저도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그저 징징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버렸지만
반성함에 
의의가 있지 않겠는가. 

이마저도 
그저 죄책감에 의한 몇분 간의 몸부림이 되지 않도록 
내일 더 잘해야겠다. 

내 아이와 너무나도 잘 놀아주는 우리 아빠,
내 남편을, 아니 모든 가족을 너무나도 잘 챙겨주는 우리 엄마,
내 미래를 너무나도 잘 밀어주는 우리 남편,
내 마음을 항상 들뜨게, 설레게 만드는 우리 아들,
나도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먹는 것.
그것으로부터 시작해야겠다. 
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