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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목의 인생담
둠칫 둠칫 두둠칫-희미하게 파란 하늘 가득히 하루살이 가득 무리지어 날아다니고그 뒷편에 늘어선 높디 높은 야자수 무리, 대비되어 멋드러지다.아무 배경 없하늘을 등지고 있는 야자수 반,회색 콘크리트 위에 잘 펴바른 하얀 페인트색 높은 빌라의 벽을 등지고 있는 야자수 반.분명 나는 딱딱하고 거친 그 벽을 증오하면서도그 벽에 까맣게 비친 야자수의 그림자를 경이롭게 바라본다. 그렇기에 나는 나약한 인간. 드넓은 대지에 우후죽순 자란 나무들을 만나지 못하고 죽어갈 인간.겨우 몇십년이 지난 야자수의 계획된 식재를 잘 눈치채지도 못한 채 그저 그 줄줄이 이어선 그림자에 감탄하며 여가의 시간을 보내는 하루살이 인간. 비참한 경외를 걷는 과수원길의 산책은 그 어느때보다도 상쾌했다.나는 생각하고 하루살이는 살아간다. 걸으..
3주 전 오일장에서 금붕어 세 마리를 데려왔다. 엄연히 말하면 한 마리당 1,000원씩 주고 사온 거지만 생명을 “산다”는 표현이 싫어서 데려왔다고 말한다. 사실 처음 계획은 두 마리를 데려오는 것이었다. 작은 수조도 샀다. 그 수조 안에 금붕어 두 마리를 넣어달라고 했다. 연세가 지긋하게 드신 오일장 금붕어 가게 아저씨는 두 마리를 요청하는 내 말에 “세 마리?”라고 대답아닌 대답을 하셨고 줏대없고 강단없는 나는 “그 수조 안에서 세 마리가 살 수 있나요? 두 마리면 충분할 거 같은데..“하고 말끝을 흐렸고 할아버지는 충분히 산다고 대답만 안했지 그런 의미의 강력하지도 않은 끄덕임을 대충 보여주시고는 고대로 세 마리를 수조 안에 후루룩 넣으셨다. 아직도 조금 의문인데 내가 요청하기도 전에 세 마리가 적..
롯데월드에 처음 가본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 매우 어릴 적이었다. 그리고 기억이 나는 마지막 방문은 약 15년 전이었다. 그땐 막 대학생이 되고 남자친구를 사귀고 함께 손잡고 놀러갔었던 때였다. 그때를 기억할 때면 매우 평범하고 행복한 대학시절을 보낸 것 같아 미소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롯데월드로 향했다. 15년 전과는 달리 나의 희망지는 아니었지만 제주도 사는 촌놈 아들이 꼭 15년 전의 제주에서 막 상경한 촌년 엄마가 원했던 것처럼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매우 강력하게 원했기에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함께 했다. 아들은 마치 별천지에 온 것 처럼 눈이 휘둥그레지고 목소리톤도 한층 올라간 채로 이것저것 말하고 놀라고 뚫어져라 쳐다보기에 바빴다. 동그란 모양의 커다..
그 즈음에 나는 매우 처절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동트는 새벽에 왠일로 책상에 앉아있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아침잠이 워낙 많아 요즘 해가 몇시에 뜨는지 따위는 당최 모르는 사람인데 말이다. 하루, 이틀 그런 기회들을 붙잡고 있다보니 요즘 같이 차가운 겨울에서 따뜻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언제 어스름해지는 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거대한 변화의 미세한 면을 가만히 보고 느끼고 있자니 문득 나의 사랑의 변화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변화라는 것은 별 것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서도 굉장히 별 거라고 해서 또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은 것. 그러니 나의 처절함은 너무 과장된 것이라고 나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지구는 너무 고요하게 변화하는데 나같은 미..
나를 '잘' 위로해주는 명곡들 중 하나. 열일곱 또는 열세살 난 모순덩어린 그앨 안고 다정히 등을 다독이며 조근조근 말하고 싶어 수많은 사람들과 너 만나게 될꺼야 울고 웃고 느끼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세상은 위선에 가득찬 너는 아무도 널 찾지못할 그곳을 향해 달려 달려 도망치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 벗어나려해도 너의 힘으론 무리였지 더딘 하루, 하루를 지나 스물다섯, 서른이 되어도 여전히 답은 알 수 없고 세상은 미쳐 있을테지 그래 넌 사람이 토하는 검은 기운 속에 진저리를 치며 영혼을 팔아 몸을 채우며 살아남진 않으리라 주먹을 꼭 쥐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겠지 너는 반짝이는 작은별 아직은 높이 뜨지 않은 생이 네게 열어줄 길은 혼란해도 아름다울거야 수많은 사람들과 너 만나게 될꺼야 사랑도 미움도 널..
탈린은 딱 한번, 그것도 한겨울 야밤의 모습밖에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에게 탈린은 새까만 밤이고 새하얀 눈이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넘긴 한겨울. 창문에는 아직 여운이 가득 담긴 크리스마스 장식이 빛나고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아름답고, 은은하게 빛나던 불빛들. 누군가를 지켜주듯, 무언가를 지키듯. 사람의 형태가 아니어도 빛으로 온기가 가득했던 도시. 언젠가 태양의 빛으로 밝은 그곳도 볼 수 있기를!
「모든 나는 사랑받는다」는 책이름에 확 끌려 박규현 시인의 시집을 샀다. 책이름과 달리 이해가 어려운, 꽤나 난해한 시들이 가득한 가운데 재밌는 시들도 가득 했다. 그중 '클레이', '도쿄, 로쿄', '재설'이라는 시가 쭉 이어지는 곳에선 삼연속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무언가에 홀린 듯 10년도 더 된 여행 사진첩을 뒤적거린다. 어느 도시로든 여행을 떠나면 그곳의 공원을 꼭 들린다. 반드시 가야할 목적지로 정한다기보다 걷기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어디든 걸어다녀 버릇하다보니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공원 몇 개 정도는 쉽사리 마주칠 수 있는 것이니까. 참새가 방앗간 지나치지 못하든 들러 한바퀴, 그리고 또 한바퀴를 정처없이 도는 것이다. 박규현 시인의 '클레이'라는 시에서는 찰흙으로 작은 공을 만들고 그것을 지..
어제까지는 너무 더웠다. 여름마다, 특히 9월 중순엔 항상 하는 지겹지만 너무 적절해서 꼭 필요한 말. “와, 아직까지 덥네. 언제까지 더우려나?” 뭐, 언제까지 더운지 알면 어쩌려고. 어쩌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이말을 지겹도록 반복한다. 그렇게 올해 9월 중순의 일상도 작년, 재작년의 9월 중순과 같이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내 이말이 지겹지 않을까. 그들을 더욱 덥거나 짜증나게 만드는 것는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나를 위해서든 그들을 위해서든 그말을 하는 대신에 이 끝더위의 찐득찐득함을 포용하고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을까. 혹은 적어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덜 지겨운 말이 있을까? 그러다 라디오에서 가을이라는 계절을 표현하는 말을 들..
2023년 설 연휴의 끝자락, 제주에 폭설이 내렸고 수십개의 항공편이 결항되었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 아닌가. 설 연휴 동안 하얀 눈 실컷 감상하는 한이 있더라도 연휴 끝에는 다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다니 말이다. 그래도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는 사람들을 그리 오랫동안 붙잡을 생각이 없다. 남녘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하루이틀이면 다 녹아 없어지니까(물론 비행기 결항은 눈보다도 거센 바람이 더 주요한 원인이지만). 그런데 웬걸- 역시나 내가 사는 바닷가 동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하얀눈이 다 녹아 없어졌지만 그후 겨우 삼일만에 다시 내리고, 다시 쌓였다. 그것도 매우 소복이. 쌓인 눈을 좋아한다. 제주에는, 제주 바닷가 동네에는 눈이 쌓여있는 기간이 항상 길지 않으..
내 아이의 말끔한 얼굴을 보고 있자면 단순한 흐뭇함을 넘어선 경이로운 마음이 든다. 나를 짜증나게 했던 그의 칭얼거림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와 내 마음 속에서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이 세상 제일가는 마술사. 내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표현하고자 하면 언어적 표현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 나름 긴 글을 쓰고 꽤 유려한 표현들을 떠올려 쓰는 것에 자신이 있지만 그러한 자신감 따위는 그의 화려한 얼굴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언제면 내가 너를 충분히 언어로 그려내 이 세상에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은 할까. 예뻐. 너는 예쁘지. 왜 이렇게 예쁠까. 어떻게 내 뱃속에서 이런 아이가 나왔지? 요즘에 이런 엄마를 도치맘이라 그런다지.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비단 너의 예쁨을 주체하지 못해서만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