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목의 인생담

산책 중 나의 생각, 하루살이 인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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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중 나의 생각, 하루살이 인간.

영화로운 나무 2024. 4. 15. 10:56

둠칫 둠칫 두둠칫-
희미하게 파란 하늘 가득히 하루살이 가득 무리지어 날아다니고
그 뒷편에 늘어선 높디 높은 야자수 무리, 대비되어 멋드러지다.
아무 배경 없는 하늘을 등지고 있는 야자수 반,
회색 콘크리트 위에 잘 펴바른 하얀 페인트색 높은 빌라의 벽을 등지고 있는 야자수 반.


분명 나는 딱딱하고 거친 그 벽을 증오하면서도
그 벽에 까맣게 비친 야자수의 그림자를 경이롭게 바라본다. 
그렇기에 나는 나약한 인간. 
드넓은 대지에 우후죽순 자란 나무들을 만나지 못하고 죽어갈 인간.
겨우 몇십년이 지난 야자수의 계획된 식재를 잘 눈치채지도 못한 채 
그저 그 줄줄이 이어선 그림자에 감탄하며 여가의 시간을 보내는 하루살이 인간. 


비참한 경외를 걷는 과수원길의 산책은 그 어느때보다도 상쾌했다.
나는 생각하고 하루살이는 살아간다. 
걸으면서 단순하게도 기분이 곧잘 좋아지는 나에게 언젠가는 깨달음을 주소서 허공에다 바란다.
둠칫 둠칫 두둠칫-
언젠가 몇번 쳐보았던 드럼 박자가 계속해서 떠오른다. 
드럼이고 자시고는 상관없다. 
그런 리듬이 산책으로 들썩이는 나의 어깨에 부딪힌다.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니라고. 
위로일까 비웃음일까.
그런 리듬은 어쩌면,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가르지 않음으로써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


어찌어찌 겨우 살아낸다고 해도 결국은 아무것도 잡을 수 없음을 깨달으라고 간절히 바라며 고통을 내팽겨쳐버리는 나의 걸음.
그무엇을 원한다고 해도 결국 나는 저 높이 솟아오른 야자수의 정수리를 어루만져보지도 못하고 떠나갈 운명이라고.
딱 한번만 원해보아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
그러다보니 딱히 간절히 원하는 것 같지도 않은 마음을 대신 어루만지며 걷는 가벼운 걸음.
나의 산뜻한 걸음, 그 걸음걸음이 이어져 만들어 낸 성스러운 산책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