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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목의 인생담
3주 전 오일장에서 금붕어 세 마리를 데려왔다. 엄연히 말하면 한 마리당 1,000원씩 주고 사온 거지만 생명을 “산다”는 표현이 싫어서 데려왔다고 말한다. 사실 처음 계획은 두 마리를 데려오는 것이었다. 작은 수조도 샀다. 그 수조 안에 금붕어 두 마리를 넣어달라고 했다. 연세가 지긋하게 드신 오일장 금붕어 가게 아저씨는 두 마리를 요청하는 내 말에 “세 마리?”라고 대답아닌 대답을 하셨고 줏대없고 강단없는 나는 “그 수조 안에서 세 마리가 살 수 있나요? 두 마리면 충분할 거 같은데..“하고 말끝을 흐렸고 할아버지는 충분히 산다고 대답만 안했지 그런 의미의 강력하지도 않은 끄덕임을 대충 보여주시고는 고대로 세 마리를 수조 안에 후루룩 넣으셨다. 아직도 조금 의문인데 내가 요청하기도 전에 세 마리가 적..
그 즈음에 나는 매우 처절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동트는 새벽에 왠일로 책상에 앉아있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아침잠이 워낙 많아 요즘 해가 몇시에 뜨는지 따위는 당최 모르는 사람인데 말이다. 하루, 이틀 그런 기회들을 붙잡고 있다보니 요즘 같이 차가운 겨울에서 따뜻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언제 어스름해지는 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거대한 변화의 미세한 면을 가만히 보고 느끼고 있자니 문득 나의 사랑의 변화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변화라는 것은 별 것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서도 굉장히 별 거라고 해서 또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은 것. 그러니 나의 처절함은 너무 과장된 것이라고 나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지구는 너무 고요하게 변화하는데 나같은 미..
나를 '잘' 위로해주는 명곡들 중 하나. 열일곱 또는 열세살 난 모순덩어린 그앨 안고 다정히 등을 다독이며 조근조근 말하고 싶어 수많은 사람들과 너 만나게 될꺼야 울고 웃고 느끼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세상은 위선에 가득찬 너는 아무도 널 찾지못할 그곳을 향해 달려 달려 도망치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 벗어나려해도 너의 힘으론 무리였지 더딘 하루, 하루를 지나 스물다섯, 서른이 되어도 여전히 답은 알 수 없고 세상은 미쳐 있을테지 그래 넌 사람이 토하는 검은 기운 속에 진저리를 치며 영혼을 팔아 몸을 채우며 살아남진 않으리라 주먹을 꼭 쥐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겠지 너는 반짝이는 작은별 아직은 높이 뜨지 않은 생이 네게 열어줄 길은 혼란해도 아름다울거야 수많은 사람들과 너 만나게 될꺼야 사랑도 미움도 널..
어제까지는 너무 더웠다. 여름마다, 특히 9월 중순엔 항상 하는 지겹지만 너무 적절해서 꼭 필요한 말. “와, 아직까지 덥네. 언제까지 더우려나?” 뭐, 언제까지 더운지 알면 어쩌려고. 어쩌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이말을 지겹도록 반복한다. 그렇게 올해 9월 중순의 일상도 작년, 재작년의 9월 중순과 같이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내 이말이 지겹지 않을까. 그들을 더욱 덥거나 짜증나게 만드는 것는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나를 위해서든 그들을 위해서든 그말을 하는 대신에 이 끝더위의 찐득찐득함을 포용하고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을까. 혹은 적어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덜 지겨운 말이 있을까? 그러다 라디오에서 가을이라는 계절을 표현하는 말을 들..
2023년 설 연휴의 끝자락, 제주에 폭설이 내렸고 수십개의 항공편이 결항되었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 아닌가. 설 연휴 동안 하얀 눈 실컷 감상하는 한이 있더라도 연휴 끝에는 다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다니 말이다. 그래도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는 사람들을 그리 오랫동안 붙잡을 생각이 없다. 남녘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 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하루이틀이면 다 녹아 없어지니까(물론 비행기 결항은 눈보다도 거센 바람이 더 주요한 원인이지만). 그런데 웬걸- 역시나 내가 사는 바닷가 동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하얀눈이 다 녹아 없어졌지만 그후 겨우 삼일만에 다시 내리고, 다시 쌓였다. 그것도 매우 소복이. 쌓인 눈을 좋아한다. 제주에는, 제주 바닷가 동네에는 눈이 쌓여있는 기간이 항상 길지 않으..
시간 : 2021년 11월 22일 아침 9시 반. 날씨 : 흐림. 우중충한 구름이 반, 중간중간 햇빛 머금은 맑은 하늘이 반. 여하튼 미세먼지 데려가 줄 비는 안오고.. 기분 : 요상함. 우중충함.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닌데 그렇다고 또 매우 좋은 것도 아님. 코로나 때문에 멀리 여행을 못 간 지 꽤 되었다. 나의 이 요상하고 우중충한 느낌은 과연 그런 것에서 오는 결핍일까. 그래도 작년 여름에는 지후랑 우도에 가서 1박까지 하고 오고 이번 여름에는 이 바다 저 바다 많이도 가서 놀았는데 단순한 여름시간*의 문제가 아닌가 보다. 어젯밤에는 2019년의 사진을 들여다보다 잠을 잤다. 지후랑 스페인으로 떠났던 여행 사진들이었다. 너무 예쁜 우리 모습에 행복했다. 그리고 지후한테 너무나도 고마웠다. 지후는 정말..
나를 항상 설레게 하는 노래 지금의 나에게 백예린이라는 뮤지션이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는 J 가 있었다. 지금 백예린의 목소리가 내 마음 속에서 반짝반짝거리듯 그때 내 마음 속에서 반짝반짝거리던 제이의 목소리는 내 낡은 일기장에 그대로 박혀있고 그녀의 노래를 다시금 펼쳐들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일기장에 그려진 빛바랜 별 하나가 튕겨나와 세월의 꼬리를 반짝거리며 나의 마음에 그대로 날아드는 것이다. 미로 안의 Alice 누가와서 입맞추나 Ruby 구두 Dorothy 누가와서 입맞췄나요 Springfield Homer Simpson 왕자가면 쓰고서는 krusty Burger 가다가 뽀뽀하고 가지요 숲속의 Top Rapunzel 누가와서 입맞추나 어제처럼 J 누가와서 입맞췄나요 Springfield Hom..
2019년 3월 어느 날의 일기. 일을 하다가 바람을 쐬러 나갔다. 다행히 근처에 공원이 있으니. 바람은 불지 않았다. 바람이 불 것 마냥 온 하늘이 회색 구름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비가 온 후라 공기가 촉촉했다. 큰 비는 아니었고 그저 보슬거리는 가벼운 비였으리라. 흙밭이 푹 푹 꺼지지는 않아서 들판 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무에까지 도달했다. 나를 그리로 이끈 것은 놀라움이었다. 이렇게 낮고 작은 나무가 벚나무였다니! 내가 지금껏 봐 온 벚나무와는 사뭇 달랐다. 내 고향 제주에는 키 크고 가지가 풍성하게 뻗어나간 벚나무들 천지인데 어찌 이리 내 키만치 작고 가지가 엉성한지. 그동안 오가며 자주보던 그 나무에 봄을 알리듯 쭈뼛쭈뼛 피어난 벚꽃을 보고야 알아챈 것이다. 그마저도 비에 젖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왔다. 올 것이 왔구나! 평소에는 전기는 아껴써야지 노래를 부르며 쓸데없이 켜진 불을 끄고 다니면서도 거리 여기저기를 가득 매운 크리스마스 전구에서 뿜어져나오는 그빛은 왜 이리도 기특한지 모른다. 온 매장을 가득 채운 크리스마스 상품들은 또 어찌나 소모적이고 일시적인 것들 일색인지 이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에도 꾸준히 나와 남편의 자본주의 비판은 계속되지만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데는 여느 때없이 신중하고 진중하다. 이번 크리스마스 명절에는 남편과 아이만 시댁에 가기로 했다. 시댁에서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설이나 추석처럼 말그대로 명절이다. 나도 오길 당연히 바랐지만 여러 사정상 이번에는 건너뛰기로 했고 시댁에서도 크게 개의치는 않으신다. 그리고 그 사정에는 직장도 있고 비용도 있지..
이것은 내가 너무 친애하는 자들에게 내가 구질구질 늘어놓는 '왜 자주 연락을 못하는가'에 대한 나의 변명이다. 정말 내가 진심으로 위하는 이들만을 칭한다. 그리고 한낱 SNS를 통해서 하는 가벼운 연락이 아닌 무거운 연락을 말한다. 물론 그런 가벼운 연락이 얼마나 편리하고 필요하고 소중한지 잘 알지만 나는 또다른 연락을 항상 꾀한다. 바로 엽서나 편지를 통한 연락이다. 이 블로그는 내가 아는 그 누구에게도 굳이 알려지지 않은 창구라 지금 당장 그 친애하는 자들이 내 변명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혹여나 나중에 보게 되면 이런 사정이 있었다고 굳이 알려주려고 하는 나의 귀여운 애교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이 시점에서 나에게 '관계'란 굳이, 그러니까 내 아껴도 모자랄 체력과 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