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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자에게, 나의 변명. 본문

나/관계의 미학

친애하는 자에게, 나의 변명.

영화로운 나무 2018. 7. 25. 22:23

이것은 내가 너무 친애하는 자들에게 내가 구질구질 늘어놓는 '왜 자주 연락을 못하는가'에 대한 나의 변명이다. 


정말 내가 진심으로 위하는 이들만을 칭한다. 그리고 한낱 SNS를 통해서 하는 가벼운 연락이 아닌 무거운 연락을 말한다. 물론 그런 가벼운 연락이 얼마나 편리하고 필요하고 소중한지 잘 알지만 나는 또다른 연락을 항상 꾀한다. 바로 엽서나 편지를 통한 연락이다. 

이 블로그는 내가 아는 그 누구에게도 굳이 알려지지 않은 창구라 지금 당장 그 친애하는 자들이 내 변명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혹여나 나중에 보게 되면 이런 사정이 있었다고 굳이 알려주려고 하는 나의 귀여운 애교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이 시점에서 나에게 '관계'란 굳이, 그러니까 내 아껴도 모자랄 체력과 아까운 마음을 소비하면서 탄탄히 쌓아야 할 필요까진 없는 그런 것이다. (물론 가까운 가족은 제외다.) 허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예외다. 

너무 오래 알고 지내 별 편견없이 나를 봐줄 수 있는 친구, 아무런 부끄럼 없이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복잡하게 자세하게 다 설명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친구, 나의 생각과는 조금 달라도 그 다른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또한 진솔하게 털어놔주는 친구, 서로 할 말 다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연스럽게 존중해주고 나 또한 그러게 되는 친구, 전 직장에서 만나 옛 친구만큼 알고 지낸 시간이 별로 길지도 않은데 무슨 소울 메이트마냥 죽이 척척 맞는 친구. 이런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정말 온 힘을 다해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고 싶다. 무뚝뚝하고 연락 자주 하는 거 체질에 안맞는 내가 내 깊은 마음을 간절하게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 나에게는 이 따위 글을 쓰는 것 정도가 애교다. 언젠가 보게 되겠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면서. 



엽서를 쓴다. 

현재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나는 이 사람들에게 가끔이나마 엽서를 보내려고 한다. 내가 엽서를 받았을 때 설렘과 기쁨을 알기에 그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크다. 

아침에 겨우 눈을 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근처 카페로 간다. 카페에서 엽서를 쓰느냐? 보통 그렇지 않다. 

대게 엽서를 가져가는 것을 까먹기도 하거니와 카페를 가는 주된 이유는 감정을 잡는 일을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집에서 감정이 너무 충만한 나를 집중시키려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영어 공부를 하고 구직 활동의 일환으로 이력서를 쓰고 고친다. 

우리 아이는 오전반만 다니는데 1시에 끝난다. 점심 먹을 시간은 있다는 소리다. 점심을 챙겨 먹고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거나 밖에 놀러 나간다. 유치원은 분명 집에서 5분 거리라 너무 편한데 아이와 함께 집에 도착하기 까지는 짧게는 20분 길게는 1시간이 걸린다. 이유는 상상에 맡기겠다. 집에 와서는 아이와 함께 논다. 중간에 간식도 챙겨줘야 한다. 밖에 놀러 나갈 때는 공원에 가기도 하고 가까운 시내에 있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을 주로 간다. 장 볼 게 있으면 장을 보고 돌아온다. 저녁을 준비하고 다같이 저녁을 먹는다. 

우리 아이는 다행히 일찍 자는 편이다. 낮잠을 잘 때는 9시~10시에 자서 내 시간이 정말 없었는데 낮잠 재우기가 너무 힘들어 낮잠을 아예 없앤 이후로는 7시~8시에 잔다. (아싸!) 나도 힘들 때는 아이 재우면서 같이 자버리긴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12시간쯤은 끄떡없이 잔다는 걸 알 것이다) 보통은 내 시간을 즐긴다. 

이때가 바로 엽서를 쓸 절호의 타이밍-

이지만 나는 뉴스도 챙겨 보고 드라마도 챙겨 보고 일 정보도 계속 찾아보고 요리할 거 레시피도 찾아보고 책도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쓸데없이 인스타에 사진도 올리고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 엽서를 향한 집중력을 자주 잃어 버린다. 이글을 쓰게 된 계기도 야심차게 엽서를 쓸 시간을 따로 마련해서 책상 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장보기 전에 리스트를 적어놓아야 한다는 게 생각이 나서 종이에 끄적이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일상에 틈틈히 써서 보낸다. 그게 한 명에게 1년에 한 번이 될까 말까다. 

부끄럽지만 5년이 넘게 말만 하고 못보낸 친구도 있고 다 쓰긴 썼는데 지난 5년 동안 거의 1년에 한번씩 거주지를 옮기다보니 편지를 분실해서 (정확히는 한국 친정집에 있는 것.. 같다... 왜 '정확히'지?) 못보낸 친구도 있다. 


어쩌면 다 변명이고 핑계다. 나는 그냥 천부적으로다가 사람을 잘 못챙기는 사람인가 보다. 

집중력과 의지가 약해진 것도 사실이고 솔직히 말하면 한 명, 한 명에게 내 할일과 하고 싶은 일을 미뤄가면서까지 보내야지 하는 생각이 내가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만큼 절실하지는 않아서인 것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보면 그 엽서가 절실할 것은 또 무엇인가!  

그래도 천부적으로 못하는 건 대부분 후천적인 노력으로 커버가 가능하다. 


나는 그렇게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내온 세월마냥 오랜 시간을 지나 끝끝내 완결지어진 엽서를 들고 아이와 함께 우체국으로 향한다. 

곧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아이에게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인 엽서 붙이기와 엽서 봉투 우체통에 쏙- 넣기를 맡기고 나면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고 설레는 지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진다. 



나의 친애하는 자들에게, 

우리 서로 가끔은, 아니 바빠진 나이만큼 꽤 오랜 시간 무소식이어도 나는 언제나 당신들을 애정하고 있음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사람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서 츤데레를 굉장히 싫어하는 나의 믿음에 근거해 당신들에게 내 보잘 것 없는 표현을 엽서에 눌러담아 보내니 그것이 오래되도 투명하게 빛나는 호박 안에 선명한 모기새끼마냥 언제나 당신 마음에 눌러앉아 있기를. 


단지 그것만이라도! 

나는 더 바랄 게 없음을 너희들은 이미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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