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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계의 미학

존경하는 부부, 윤정희와 백건우

영화로운 나무 2016. 10. 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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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인터넷 창에 몇 달 째 닫히지를 못하고 배터리며 용량이며 머 이것저것 소모하며 버팅기고 있던 주소창 하나.

얼른 블로그에 옮기고 그만 내 너를 고이 접어 닫아주리라-

 

 

배우 윤정희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윤정희라는 이름이야 머 오다가다 몇 번 들어본 것 같지만 내 나이 아직은 20대

익숙한 얼굴일리 만무하다.

백건우라는 이름은 내가 만삭 때, 친정에 머물고 있었는데 

제주, 그 따뜻한 바다의 한 항구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 공연을 하셨을 때

피아니스트로서 처음 알게되었다.

 

그런 그둘을 부부로서 알게된 것도 같은 날이었다.

그들을 아주 잘 알고 또 많이 들어 온 나이대인 울엄마와 이모에게 주워들었다.

백건우의 연주회에 온 윤정희는 젊은 나에게는 '그냥 옛날 여배우'였다.

아무리 그녀가 공손하고 조용하게 인사했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러한 공손함과 차분함 뒤에, 과연 여배우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싶은, 도도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 도도함이 무엇을 내세우려는 것 같아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강인한 기운이 느껴지는 정도랄까-  

하여튼 그녀는 그래봤자 나에게 여전히 '그냥 옛날 여배우'였다.

그렇게 '그냥 옛날 여배우'로 남을 뻔 한 윤정희를

옆에 같이 앉아 계시던 울엄마와 이모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으니

몇 마디 되지 않는 말들로 나에게 윤정희를 '보통 여배우와는 달리 강단있고 지조있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나버린,

그래서 더욱 멋진 묘령의 여배우'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단 몇 분 간의 말들로 현혹될 내가 아니다.

환상을 가질 정도는 못되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남편의 아내라니, 머 이상할 것도 없다 싶었다.

 

 

그런데 이 기사를 통해 그들의 삶을, 그들의 관계를 좀 더 엿보고 나니

그저 그런 유명인의 삶, 특히 이국에서 화려하고 풍요로운 행복에 겨워 사는 부부가 아닌

행복하긴 한데

그런 외면적이고 물질적인 단순함에서 벗어난 고차원적인 행복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온전히 반하고 말았다.

이런 것이야말로 환상이지*

진심으로 본받고 싶은, 계속해서 여운이 남는 삶을 살고 있는 부부다.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들의 기사 단 하나를 읽고선 마치 장편 소설 하나를 헤치운 듯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멋져보았자 한낱 저 멀리 다른 곳에 살고 있는, 그래 그냥 어느 멋진 여배우와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아닌

굳이 멋지다고 말하지 않아도 나의 저 깊은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받게된 부부가 되버린 것이다.

 

 

 

"자동차고 없고 도배도 직접... 우린 물질에 큰 관심이 없어요"

비록 아기 가진 부부가 자동차 없이 살기 힘든 헬서울에 살며

주변 사람들이 자동차 없이는 힘들지 않냐는 말에 그렇다고 장단맞춰 동조하고 있는 우리지만,

전 세입자에 의해 칠해진 천연 페인트 색이 맘에 들어  

나갈 때 집주인의 비위에 맞춰 그 페인트를 다 뜯어놓고 가야할 판인 우리지만,

그러니까 이 부부의 상황과는 조금 다른 우리지만

얼마나 큰 동질감이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동질감이 나를 적잖이 위로해주었다.

 

1966년 데뷔하여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배우였다는 윤정희는 미용실을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콧대 높은 여배우의 머리는 그의 늙은 남편 백건우가 차분하게 빗어준다.

"나는 미용실을 통 안 가거든요. 꾸미는 데 쓸데없이 돈과 시간 쓰는 게 싫어요. 건우 백(그는 남편을 그렇게 불렀다)이랑 파리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안 갔지요."

유럽의 악명높은 미용실 비용과 그에 비해 심히 떨어지는 결과물이 가져온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흠집을 내보려해도 "꾸미는 데 쓸데없이 돈과 시간 쓰는 게 싫다"는 말에 무너진다.

멋지잖아!

 

 

"영화 촬영을 시작하면서 기도를 많이 했다. 배우가 되더라도 화려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름에 고요할 정(靜)을 넣어 정희(靜姬)로 이름을 바꿨다."

―영화판이 본래 화려한데 혼자만 고요하게 살 수 있나요.

"가능해요.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면 되죠."

어머나, 이 언니 좀 보게.

심쿵-

불변의 진리인데 혼자만 아는 냥 이렇게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고 있다니.

요즘 유행어인 뇌섹남의 여자판이 바로 이분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 정신상태가 진정 섹시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런 정신이야 나도 알긴 알지만 오롯이 이대로 살아내고 계시다는 것이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우리는 절대 배우가, 특히 여배우가 화려하게 살지 못한다, 아니 살지 않는다 혹은 그녀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댄다는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없다. 아니 그러한 '다른 사람의 삶'의 프레임 자체를 용납하지 못한다. 오히려 유별난 아이라 시기질투하거나 비꼬겠지-

딱히 그럴 생각을 할 시간적 여유도 필요성을 느끼는 의식도 없다

우리 사회는 여배우라면 무조건 예뻐야되고 날씬해야되고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 여기고

또 여배우가 되면 그러한 타이틀을 쥐었으니 화려함을 대가로 그 뒤에 내몰리는 온갖 악조건은 다 감당해야 내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 사회는 의사라면 무조건 배운 사람이고 똑똑하니까 환자 따위야 그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으면 강압적으로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고

또 의사가 되었으면 그러한 타이틀과 권위를 쥐었으니 그러한 전지전능함에 맞게 연봉이 일반인의 몇 배가 되든 그건 실로 당연하다.  

더 많은 직업군에 토를 달고 싶지만

'존경하는 부부' 포스트니까 조금만 참으련다..

 

윤정희 팬클럽 회장이자 영화평론가인 안규찬씨는 "윤정희가 등장하기 전 한국 영화 속 여자 주인공 캐릭터는 무척 전형적이었다. 남자를 뺏거나 남자를 빼앗기거나, 아이를 뺏거나 아이를 빼앗기는 역할이 전부였다. 윤정희가 데뷔하면서 비로소 한국 영화에도 팜므파탈부터 지적인 여성까지 복잡하고 미묘한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거다. 바로 이거다.

심지어 연기적인 면에 있어서도 이러한 역량을 발휘하셨다니 더욱 더 통쾌하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나는 복싱에 도전한 여배우를 좋아하고, 여리여리하고 순종적인 여자 캐릭터보다는 여리여리하더라도 자기 할 말 다하고 가끔 화날 때는 욕지거리도 내뱉는 걸걸한 여자 캐릭터가 나오는 드라마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바느질 잘하고 집안일 잘하는 우리 남편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청혼은 어떻게 하시던가요.

“그이도 나도 형식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웃음). 우린 여러모로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비슷했어요. 둘 다 뭔가를 억지로 계획하지도 않고,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법도 없었지요.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곁에 남기로 한 거죠.” 윤정희는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었다. 신부 화장도 직접 했다. 예물은 실반지 한 쌍이 전부였다. 화가 이응노 선생 같은 가까운 이들 몇을 불러다 놓고 프랑스 시골 한 작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대 최고 여배우의 결혼식은 조촐하고 소박했다.

―여자로서 아쉬웠을 법도 한데요. (이 질문도 맘에 안들지만 넘어가겠어-ㅅ- 대답이 너무 맘에 들어서)

“전혀요. 결혼하고 나서도 나는 메이드(가정부) 한번 쓴 적이 없어요. 도배도 우리 둘이 직접 했고요, 지금도 우린 자동차도 식기세척기도 없이 살아요(웃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손으로 했는데 그게 오히려 편하고 좋았어요. 그 탓에 지금 손이 이렇긴 하지만요.” 윤정희는 세월에 거칠어진 손을 내보였다. 옆에 있던 백건우가 말을 보탰다. “둘 다 물질에 큰 관심이 없어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종종 불러놓고 대접할 수 있는 만큼만 벌면 그만인 거죠.”

 

내가 주변 사람들이 피곤하게 만날 사회 문제 지적하면서 하는 푸념 끝에 나오는 말은 항상 이거다.

"우리는 항상 더 많이 벌려고 해서 문제야. 이미 많은데 더 불리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라고. 다 각자 어느 정도껏만 챙겼어도 사회가 이렇게 살기 힘들게 부패하지는 않았을 거야."

남의 것을 빼앗고 나의 것은 정도에 맞지 않게 불리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현대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종종 불러놓고 대접할 수 있는 만큼만 벌면 그만이라니,

멋지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그 '대접'이란 말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하아.. 자꾸 옆으로 새지 말아야지;;

 

―백건우를 뺀 윤정희는 어떤 사람입니까.

윤정희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지금의 내 모습은 건우 백과 함께 만든 거예요. 우린 사치를 피곤해하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겨요. 남편이 스페인, 이탈리아, 이스라엘 같은 곳에서 연주를 마치고 나면 같이 손을 잡고 곳곳을 보러 다니죠. 둘이서 함께 아름다운 장소를 정말 많이 다녔고, 눈부시게 근사한 장면들을 참 많이 봤어요. 그런 순간들을 그렇게 평생 함께하며 살았으니 건우 백의 삶과 내 삶은 어느덧 같은 것이 되었겠죠.”

 

―삶의 마지막 모습을 스스로 고를 수 있다면 어떤 모습입니까.

윤정희는 백건우를 조용히 바라보며 “여보” 하고 불렀다. “당신이 내게 늘 그랬잖아. ‘평생 꿈만 꾸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런데 계속 꿈만 꾸다가 가고 싶은데 어쩌지.” 백건우가 윤정희 말에 느릿느릿 답했다. “응. 가끔 당신을 보면 고무풍선 같아. 내가 손을 뻗어서 현실이라는 땅으로 끌어내려도 당신은 다시 둥실 떠오르지. 근데 나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순수한 당신이 좋아. 당신이 부러워.”

윤정희가 웃었다. “들으셨죠. 나는 마지막까지 자잘하고 세속적인 문제들로 지지고 볶고 살기보단 이렇게 아이처럼 근사한 꿈을 꾸면서 살다 갈래요. 돈이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더 성공할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을래요. 그저 더 멋진 영화, 더 아름다운 음악, 더 멋진 인생만 생각하다가 떠날래요. 건우 백이랑 그렇게 예술적으로 살다가 갈래요. 괜찮지 않아요?

그의 말이 문득 시(詩)처럼 들렸다.

 

 

 

윤정희의 마지막 말은 요즘의 나를 너무나 잘 위로해준다.

내가 이 사회를, 이 현실을 비난하고 비판할 때

나에게 동조해주고 나와 같은 이상을 그리던 또래들이

이제는 적응할 때가 되지 않았니? 나지막히 다그치는 것처럼

그 안타까운 눈초리와 따뜻한 동정이

나를 현실부적응자로 낙인찍는 것만 같은 때

아니라고,

나는 분명 꿈을 꾸며 날아가고 있는 게 맞다고

괜찮다고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백건우의 마지막 대답은 나를 너무나 반성하게 만든다.

우리 부부는 남편이 더 윤정희 같은 사람이었다.

남의 시선을 잘 의식할 줄 몰랐고

그저 자신의 소신대로,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절대 급하지 않게 사랑하듯 천천히 따라가며

항상 꿈을 꾸던 남자.

나는 그의 곁에서 과연 백건우 같은 사람이었을까?

함께 그렇게 꿈을 꾸며 떠오르고 싶었던 나는

오히려 내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남편을 많이 얽매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파온다.

더 큰 품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끊임없이 꿈꾸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22/20160722015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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