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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계의 미학

둥근 지구의 다른쪽 면

영화로운 나무 2024. 2. 16. 13:39

그 즈음에 나는 매우 처절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동트는 새벽에 왠일로 책상에 앉아있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아침잠이 워낙 많아 요즘 해가 몇시에 뜨는지 따위는 당최 모르는 사람인데 말이다. 


하루, 이틀 그런 기회들을 붙잡고 있다보니 요즘 같이 차가운 겨울에서 따뜻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언제 어스름해지는 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거대한 변화의 미세한 면을 가만히 보고 느끼고 있자니 문득 나의 사랑의 변화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변화라는 것은 별 것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서도 굉장히 별 거라고 해서 또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은 것. 그러니 나의 처절함은 너무 과장된 것이라고 나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지구는 너무 고요하게 변화하는데 나같은 미물이 뭐라고 혼자 징징대고 앉아있느냐 말이다.

내가 앉아있는 지구의 이쪽면의 색깔이 굉장히 아름다운 색으로 천천히 환해져갈 때, 이런 시간이어서 나는 지구의 반대쪽면의 색깔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하필 지구는 둥글어서 그 다른면은 색깔을 매번 달리하고, 나는 그걸 잊은 채로 살아가곤 하지만 또 이렇게 새벽녘의 어스름을 빌어 그 다른면을 생각하고, 또 내버려두었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어렴풋이 생각하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글을 쓰고, 그렇게 조금은 슬프기도 한 기분으로 시작한 마음을 갑자기 기분좋게 마무리지으며 새벽의 색깔에 감탄하고 또 변한 하늘의 색을 잊어버리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나의 생각과 시간을 존중한다. 

참 다행이다.

새벽의 감히 표현할 수 없는 푸르른 색에 감사한다.
분명 어딘가에선 다른 색이거나 또 같은 색일거라고 생각하며 인정하고,

이내 또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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