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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꽃다운 육아 고찰 (6)
나무 목의 인생담

롯데월드에 처음 가본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 매우 어릴 적이었다. 그리고 기억이 나는 마지막 방문은 약 15년 전이었다. 그땐 막 대학생이 되고 남자친구를 사귀고 함께 손잡고 놀러갔었던 때였다. 그때를 기억할 때면 매우 평범하고 행복한 대학시절을 보낸 것 같아 미소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롯데월드로 향했다. 15년 전과는 달리 나의 희망지는 아니었지만 제주도 사는 촌놈 아들이 꼭 15년 전의 제주에서 막 상경한 촌년 엄마가 원했던 것처럼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매우 강력하게 원했기에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함께 했다. 아들은 마치 별천지에 온 것 처럼 눈이 휘둥그레지고 목소리톤도 한층 올라간 채로 이것저것 말하고 놀라고 뚫어져라 쳐다보기에 바빴다. 동그란 모양의 커다..
내 아이의 말끔한 얼굴을 보고 있자면 단순한 흐뭇함을 넘어선 경이로운 마음이 든다. 나를 짜증나게 했던 그의 칭얼거림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와 내 마음 속에서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이 세상 제일가는 마술사. 내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표현하고자 하면 언어적 표현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 나름 긴 글을 쓰고 꽤 유려한 표현들을 떠올려 쓰는 것에 자신이 있지만 그러한 자신감 따위는 그의 화려한 얼굴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언제면 내가 너를 충분히 언어로 그려내 이 세상에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은 할까. 예뻐. 너는 예쁘지. 왜 이렇게 예쁠까. 어떻게 내 뱃속에서 이런 아이가 나왔지? 요즘에 이런 엄마를 도치맘이라 그런다지.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비단 너의 예쁨을 주체하지 못해서만 하는 것..
요즘 우리가 자주 하는 흡사 꽁트풍의 대화가 하나 있다. "아이야, 사랑해" "나도 사랑해" "내가 더 사랑해" "내가 더, 더 사랑해" ... 이렇게 무한반복되는 싸이클 속에서 아이는 변주를 시도한다. "바다만큼 크게 사랑해" 그럼 나는 "바다 위 하늘만큼 높이 사랑해" 라고 받아치고 웃음으로 무마할 줄 알았던 아이는 하늘에 그치지 않고 우주까지 뻗어나간다. 우주의 광활함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7살의 작은 아이. 그런데 며칠 전 또다른 진부한 변주에 나는 조용히 놀랐다. "엄마가 날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해"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걸 어찌 알고..' 너무나 당당한 아이의 엄포에 코웃음이 피식 났다. 하지만 그런 걸 비웃으면 아이의 마음이 다칠 수도 있다는..
아이가 뜬금없이 말했다. "엄마, 예뻐." 내가 아이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지후야, 너는 어쩜 이렇게 예뻐?"인데, 여기에 덧붙여서 "엄마도 예뻐?" 물어보면 '응'이란 간결한 대답 혹은 '응. 엄마도 예뻐'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과 적절한 맥락이 없는 뜬금없이 일방적인 '엄마, 예뻐'라니. 나는 몇초 간 어쩔 줄을 몰랐던 것 같다. 아무 말도 없이 이런저런 간소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던 찰나의 고백은 나를 충분히 울렁이게 했다. 조금은 공허한 마음인 나의 요즘 상태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지만 마냥 평온한 상태의 나였어도 이렇게 팔랑팔랑 여린 나비같은 생명체로부터 태풍같이 훅 들어온 공격에는 분명 놀랐을 것이다. 벅차다.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내가 이제..
아이가 2살 때까지 독박육아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남편이, 친정 어머니가, 언니가 많이 도와주었다. 3살이 되던 해 타국으로 나와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 독박육아가 시작되었다. 그리 완전한 독박도 아니었던 게 남편이 공부하러 온 것이어서 학생의 신분인지라 수업이 없을 때는 육아를 했다. 어떤 날은 나보다 더 많이.그래서 내가 독박육아를 했을 때는 단연코 남편의 시험기간, 논문 마무리 기간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독박은 독박인지라 힘들 때가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그 잠깐이 생리기간의 우울감과 변덕스럽게 불쑥불쑥 찾아오는 짜증, 저조하다 못해 저질스러운 체력 상태 및 엉망진창인 영국의 겨울날씨와 적절히 어우러지면 세상 이보다 더 힘든 고난이 없다. 그날도 어김없이 우중충한 날이었다. ..
아이를 낳는 그 순간,그 순간의 기억을 담고 싶다. 출산을 하고 친구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은 바로 '얼마나 아파?'다.단순해 보이지만 나름 구체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나는 출산 전에는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관해 진지하게 상상해본 적이 없다. 추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얼마나 아플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프기야 하겠지. 근데 '얼마나' 아플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엄마한테 물어본 적 조차 없는 것 같다.그런데 '아팠어?'라는 당연하고 뻔한 질문을 기대한 나에게 꽤 많은 친구들이 대체 '얼마나' 아프냐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그래서 나는 신나게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아프긴 진짜 아프다.근데 그 아픈 정도가 말로 글로 아무리 해봐야 표현이 안될 정도로 아픈 것이다.차원이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