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목의 인생담

엄마, 예뻐. 본문

꽃다운 육아 고찰 /성장, 바람같이

엄마, 예뻐.

영화로운 나무 2019. 8. 22. 04:36

아이가 뜬금없이 말했다.

"엄마, 예뻐."

 

내가 아이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지후야, 너는 어쩜 이렇게 예뻐?"인데,

여기에 덧붙여서 "엄마도 예뻐?" 물어보면 

'응'이란 간결한 대답 혹은 '응. 엄마도 예뻐'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하지만 이런 질문과 적절한 맥락이 없는 뜬금없이 일방적인 '엄마, 예뻐'라니.

나는 몇초 간 어쩔 줄을 몰랐던 것 같다. 

아무 말도 없이 이런저런 간소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던 찰나의 고백은

나를 충분히 울렁이게 했다.

 

조금은 공허한 마음인 나의 요즘 상태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지만

마냥 평온한 상태의 나였어도

이렇게 팔랑팔랑 여린 나비같은 생명체로부터 태풍같이 훅 들어온 공격에는 

분명 놀랐을 것이다. 

 

벅차다.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내가 이제 조금씩 그빛을 뜨거운 태양에 내어주며 바래어가고

평생 사랑받을 것 같던 내가 버림받는 기분이 들 때까지 자존감은 바닥을 쳐내려갈 때 

이 작은 아이는 무한한 그리고 오직 유일한 믿음으로 나에게 기댄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힘들고 고되지만 

초점을 조금 바꿔 내가 이 아이에게 기대어야 하겠다 싶은 마음을 먹게 되면

이 아이는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걸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이가 필요한 것, 아이에게 해주어야 하는 것에 집중하면

다 내가 해야할 일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될 수 밖에 없다.

'착한 엄마'라는 말의 알을 깨부수고 말하자면 그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 나에게 아이가 주는 것에 집중해보면

아이도 충분히 나를 위해 베풀고 있다. 

물론 아이의 베품은 '엄마, 예뻐'와 같은 조금은 호혜적?인 대답뿐만 아니라

그냥 그 존재 자체다.

아이의 존재라는 굵은 기둥에서 뻗어나온 가지들은

더 점점 성장할 뿐만 아니라 더 다채로워지고 끝끝내 영양분을 제공한 내가 닿을 수 없는 경지에 가 이를 것이다.

 

나는 그저 그 풍성해진 나무를 바라만 보며

여전히 그 존재 자체에 감사하며

시들어가는 고목으로 전락하면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을 상상하고 있자면 

솔직히 너무 슬프다.

 

하지만 단어가 '고목'이고 '전락'이니 더 슬프지

우리는 분명 그러해야만 한다. 

 

아이가 결국에는 나에게서 떼어져 나갈 것임을 

저 큰 세계로 나아갈 것임을

그래서 지금처럼 나와 붙어있지 않음을

아이는 절대 내 소유가 아님을

나는 항상 잊지 말고 가슴에 아로새겨야 하는 것이다. 

 

 

나무야, 

그럼에도 내 나무야,

나에게, 초라한 나에게 

빛을 주고, 내 가슴에 빛을 비춰주고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에도

너는 항상 기둥이었지.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나를 받쳐주어

너무 고마워.

 

먼 훗날

우리가 조금은 멀리 떨어진 나무와 꽃일 때라도

바람이 불 때마다 

서로의 향기로 예쁘다고 말해주길.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엄마가 향기로운 꽃으로 꼭 만발할게.

 

그 순간순간을 위해.

 

 

 

 

 

2019년의 늦봄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