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목의 인생담

그저 그런 의식의 흐름, 크리스마스 시즌/ 2018, 영국. 본문

나/끝없이 자아자아

그저 그런 의식의 흐름, 크리스마스 시즌/ 2018, 영국.

영화로운 나무 2018. 12. 27. 03:58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왔다. 

올 것이 왔구나!


평소에는 전기는 아껴써야지 노래를 부르며 쓸데없이 켜진 불을 끄고 다니면서도 

거리 여기저기를 가득 매운 크리스마스 전구에서 뿜어져나오는 그빛은 왜 이리도 기특한지 모른다. 

온 매장을 가득 채운 크리스마스 상품들은 또 어찌나 소모적이고 일시적인 것들 일색인지 

이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에도 꾸준히 나와 남편의 자본주의 비판은 계속되지만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데는 여느 때없이 신중하고 진중하다. 


이번 크리스마스 명절에는 남편과 아이만 시댁에 가기로 했다. 

시댁에서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설이나 추석처럼 말그대로 명절이다. 

나도 오길 당연히 바랐지만 여러 사정상 이번에는 건너뛰기로 했고 시댁에서도 크게 개의치는 않으신다. 

그리고 그 사정에는 직장도 있고 비용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새로 시작한 일에 너무 지쳐버려서 이번에는 큰 여유를 가지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둘만 보내는 마음이 완전히 편치만은 않다. 

그렇다고 딱히 불편할 것도 없지만 

기차 좌석에 앉은 아이의 해맑은 눈망울과 미소를 차창 너머로 지켜볼 때 드는 오묘한 마음은 생경하기만 하다. 

솔직히 아이가 떠난 지금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마냥 좋지만 무려 몇주 전부터 문득 문득 그냥 나도 갈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약간씩 들 때가 있었는데 기차역에서 배웅할 때가 제일 컸다. 

사실 크리스마스에 시댁에 가면 정말 좋다. 

시부모님이 워낙 편하게 지내도록 배려를 해주시기도 하지만 우선 먹을 게, 맛있는 먹을 것이 너무 많다. 

크리스마스 쿠키, 크리스마스 케이크, 크리스마스 만찬에 평소에도 널린 나의 사랑 각종 치즈들에 빵, 정말 맛있는 빵, 프릿첼, 시아버지가 지하창고에 짝으로 저장해두고 마셔서 항상 넘쳐흐르게 제공되는 와인과 맥주. 

우리에겐 아직 사치인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여기저기 과하지 않게 시어머니의 따뜻한 감성으로 채워진 크리스마스 장식과 불빛들. 

하지만 사람이 원하는 걸 동시에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그런 배부름과 따뜻함의 호사를 누렸으니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덜 배부르고 덜 따뜻하더라도 내가 좀 더 필요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누려야지.  

이런 생각과 고민의 끝에 결정된 일인 것이다. 


그런데 너도나도 트렁크를 끌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지나쳐 걷고 있자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아, 저 사람들의 여정의 끝엔 따뜻한 온기가 가득찬 크리스마스빛 거실이 있겠구나. 그곳은 가족들의 수다로 가득차 있겠지. 

사실 내가 그런 상상을 한다고 해서 그로부터오는 박탈감이나 소외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번에는 그러한 곳으로 가지 않겠다고 정한 것이지 나에게 그런 게 없어서 못가는 건 아니니까.

다만 나만 빼고 다 이곳을 떠나는 것 같은데 나만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타지에 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외국인 것도 그렇지만 서너달 전에 이사온 곳이라 친분이 두텁기는 커녕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곳이다. 


그러다가 역에서 기차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이 아닌 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남편과 아이를 떠나보낸 기차가 빠진 후에 플랫폼에는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플랫폼 계단을 괜시리 아쉬운 마음으로 올라 텅 빈 플랫폼 위 다리를 헛헛한 마음으로 지나고 역 정문에 다다르니 비로소 조금은 다른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회색 츄리닝 바람에 분홍색 조끼만 걸친 채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웃기웃 거리는 백발의 할머니. 

갈색 코듀로이 바지에 파란색 니트, 그것도 하얀 눈이 내리는 초록 들판에 커다란 눈사람이 박힌 크리스마스 점퍼를 입은 할아버지.

영국 사람들은 기후관계상 니트를 많이 입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이러한 크리스마스 무늬가 새겨진 니트, 크리스마스 점퍼라 불리는 니트를 유행처럼, 기념처럼 많이 입는다. 

독일 사람인 남편은 대놓고 크리스마스다 외치는 이 니트들의 향연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손사래를 치긴 하지만, 

저 알록달록하고 크리스마스 감성 가득한 니트를 꺼내 입을 때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고 있자니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그래, 그러고보니 떠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떠나오는 사람도 있겠구나! 

이곳을 다 떠나는 게 아니라 이곳으로도 사람들은 따뜻함을 찾아 오겠구나. 

물론 그 사람들이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홀로 남겨진 기분은 애써 지울 수가 있었다.


나는 거의 매해 이런 생각을 한다. 

'도대체 크리스마스가 뭐길래, 아니 더 정확히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뭐길래, 겨울마다 수없이 들었기에 지겨워질만도 한 캐롤이 뭐길래 

대체 왜 이렇게 매 겨울 변함없이 벅차오를까.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따뜻한 기운을 주는걸까.'

심각하지도 회의적이지도 않은 그냥 그저 그런 나의 의식의 흐름 중 하나다. 

'어떻게 나무들은 저리 아름다운 모양으로 가지를 뻗어나가게 되었을까'와 같은. 

'어떻게 하필 왜 구름은 저런 모양이라서 사람의 마음을 몽글몽글 설레게 평온하게 만드는 걸까'와 같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에 감사하다 못해 의문을 품으며 그에 대한 경이로움 표현하는 것. 

괴로운 통근길에 찌들고 가계부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은 영국식 자본주의의 야비함에 짓눌려 일상 곳곳을 향해 비난을 내던지던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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