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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영국

My Normal Easter Holiday

영화로운 나무 2019. 4. 23. 05:56

부활절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같이 영국에서도 아주 큰 명절이다. 

우리가 설에,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듯이 영국 사람들도 저마다의 설렘과 약간의 진부함을 가지고 고향으로 향한다. 

그리고 우리가 설에, 추석에 고향을 피하기도 하듯이 영국 사람들도 고향을 향하는 대신 파티에 흠뻑 취하기도, 해외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타지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가족의 세 번째 부활절은 첫 번째, 두 번째와는 달리 타지의 우리집에 머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저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하지만 절대 여느 주말과 같을 수는 없었다. 토요일, 일요일 겨우 이틀과 Easter Friday, Easter Monday를 포함한 무려 사흘의 기간이 어찌 같은 기분일 수 있으랴! 

나는 너무너무 설렜고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그동안 나 스스로를 우울증이라 진단했던 나 자신이 어색할 만큼 나는 정말 무언가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우선 늦잠을 퍼잤고

그렇다고 잠으로만 날려버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날씨가 또 너무너무 좋았다. 

- 영국은 4월 둘째 주, 셋째 주까지 최저 온도 0도를 찍고 최고 온도 13~4도를 찍으며 변함없이 가차 없는 일교차로 사람 여럿을 잡음과 동시에 우중충한 잿빛 하늘을 기본으로 항상 깔고 있다가 잠시 잠깐 반짝이는 하늘을 보여주곤 했지만 바람만 불면 스산한 기운이 드는 쌀쌀함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정말 끝끝내 잘 버텨온 처량한 영국 거주민들에 대한 은총이 내린 듯 이 황금연휴기간 사흘 동안 제대로운 봄도 아니고 여름, 따땃한 여름의 기온에 매 순간 - 이것은 영국에게, 영국 날씨에게 정말 어려운 대목이다 - 정말 일분일초도 빠짐없이 빼곡히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날씨를 선사해주어 이 연휴 동안 이곳 사람들은 모두 이 시간을, 날씨를 알차게 활용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 또한 그랬다.

하루는 느지막하게 채비를 하고선 가까운 공원에 가서 온종일 놀았고, 

또 하루는 조금 부지런하게 도심으로 가 쇼핑을 즐겼고, 

다른 하루는 기차를 타고 조금 먼 공원에 가서 또 하루 왠종일 놀다 느지막하게 돌아왔고, 

나머지 하루는 나름 쌓인 여독(?)을 푸는 의미로 집에서 뒹굴대다가 바로 앞 공원에 가서 몇 시간이나마 뒹굴다가 왔다.'

마지막 하루는 정말 나도 모르게 '이 눈부신 햇빛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배웅해줘야지'라는 마음가짐이 들었던 것 같다. 환경이란 건 나 같은 집순이도 자연스럽게 발길이 바깥으로 닿도록 내어 끈다.

이 얼마나 가득 찬 하루하루였던지. 

 

가까운 공원에는 들판이 있고, 놀이터가 있고, 놀이터가 또 있고, 그 옆에 감춰진 듯한 작은 샛길로 빠지면 산책도로가 나왔다. 그 산책도로 옆을 따라 아주 좁은 도랑이 졸졸 흘렀는데 그 깨끗한 물은 예상치 못한 호수에 다다랐다. 오리 가족과 백조가 노니는 호수를 앞두고 나의 아이는 앞서 걷던 아이들을 따라 양말을 벗고 신발을 벗어던졌다. 첨벙첨벙.

생각보다 물은 차가웠다. 수십 초는커녕 한 십 초만 물속에 있어도 발바닥이 에이는 듯한 차가움이었다. 신기했다. 햇빛이 이리도 따가운데 그래도 아직은 여름이 아니라 그런 것인지 영국은 영국이라 그런 것인지. 옆에 있던 엄마는 자연에서 온 물이라 그럴 것이리라 그 시작을 살피려는 듯 두리번두리번거리신다. 

아이는 잠시 잠깐 흐뭇해하다가 이내 방방 뛰며 들판으로 다시 올라갔다가 물속으로 다시 뛰어들기를 반복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무의미한 반복에도 나도 아이도 기분이 점점 더 좋아졌다. 그저 단순한 재미였다. 좋은 공기와 겨우 차가운 자연의 물,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초록색으로 가득 찬 그 공간은 더할 나위 없는 재미였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그저 평범한 공원의 온기와 시간은 우리가 맘껏 써도 되는 그런 것이었다. 이 온기와 시간이 나와 나의 작은 아이의 마음 어느 한켠에 자리 잡고 있다 생각하니 설레기까지 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그렇게 충만했다. 

커다란 백조도 아이를 유혹하지 못하고 우리는 그렇게 그 작고 좁은 도랑에 갇혀 한동안 웃었다.

차가운 발을 자꾸 땅에 부비며 온전하게 재밌는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니 마음은 되려 따뜻해지고 있었다. 

 

두 번째 공원에서도 아이는 더 커다란 호수에 발을 담갔다. 

우리 아이는 저 멀리까지 펄쩍펄쩍 뛰어가서는 물장구를 온 사방에 튀기는 행동이 자유로운 아이는 못되었다.

우리 아이는 주인이 던진 나뭇가지를 물어오려고 헐레벌떡 뛰어가는 커다란 개를 따라잡다 못해 개의 행로를 바꾸려고까지 하는 - 심지어 자기네 집 개가 아님 - 용감하고 적극적인 아이는 못되었다. 

그저 그 깊이를 눈대중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 내에서 발을 담가보고 또다시 나와서 물을 바라보다가 다시 들어가 보기를 반복하는 아이였다. 

조금 더 멀리 가봐도 좋다는 나의 말에도 아이는 혹여나 넘어져도 내가 재빨리 달려올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서 물을 휘저어 보았고 또 바닥에 있는 조약돌을 꺼내보았다. 

어떨 때는 조금 욕심이 나서 너도 저 아이처럼 저기까지 가봐, 혹은 굳이 비교를 통하지 않더라도 너도 저기까지 갈 수 있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그저 아이가 온전히 아이의 마음대로 그 시간의 자신을 보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그 말의 의미인가. 따뜻한 공기와 여유로운 시간들이 가끔은 모질기도 한 나란 엄마의 마음을 한없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한동안 내 앞 가까이서 물가를 거닐고 조약돌을 줍고 던지고 다른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다가 또다시 물가를 거닐었다. 

 

산책을 나온 수많은 커다란 개들 사이에 작은 개들도 몇몇 보인다.

커다란 호수의 중간중간에 수풀이 아닌 모래로, 자갈로 사람과 개들이 물로 접근하기 쉬운 물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중 한 자리에 같은 집에서 놀러 온 세 마리 개식구가 함께 놀고 있었다. 

한 마리는 나이가 좀 있는지 물속에서 무슨 반신욕을 하듯 가만히 자리 잡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너도 들어와서 같이 놀자'라는 표정으로 항상 마지막 시선을 주인에게 주며 펄떡펄떡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고,

마지막 제일 작은 한 마리가 그 물가의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타닥타닥 발 빠른 소리를 내며 잽싸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오른쪽 끝까지 다다르면 거기 있는 풀숲에 코를 묻고 한 몇 번 킁킁 대고서는 다시 왼쪽 끝으로 달려왔고 왼쪽 끝에 다다르면 또다시 오른쪽 끝까지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나의 아이는 그 작은 개를 보며 꺄르르 꺄르르 웃었다. 

수십 번을 반복하는 그개를 지켜보며 나의 아이는 정확히 수십번을 웃어댔다. 

 

개야, 아이야. 

너희들은 천사다. 

너희들은 이 세상의 더없는 축복이자 행복이다. 

 

 

마지막 날도 여유로왔다. 

아침에 잠시 잠깐 아, 내일이면.. 이라는 푸념을 하고 그 푸념이 내 정신의 평온함을 깨뜨릴 뻔했지만 그래도 엄마가 싸 준 김밥 덕인지 아이의 수다 덕분이었는지 잘, 금방 지워냈다.

급하게 채비를 하거나 계획할 것 없이 그저 놀다가 먹다가 햇빛에 이끌려 느지막이 집 앞 공원으로 갔다.

오후의 햇빛은 여전히 강했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은 시원했다.

나의 아이는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도 타고, 자동차 모양 미끄럼틀 안에 타서는 어제 먹었던 아이스크림 밴 흉내를 내었다. 

그래서 나는 그네도 밀고, 미끄럼틀도 타보고, 시소도 타고, 자동차 모양 미끄럼틀 안에 탄 나의 아이의 아이스크림도 호로록 호로록 먹는 흉내도 내었다.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도 먹고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정확히 어제 아이스크림 밴 아저씨가 말했던 대로 다 떨어졌다고 해서 대신 초콜릿 베리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두 개나 먹고 나니 더는 못 먹겠다고 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그럼 이제는 음식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선 "피쉬 앤 칩스를 줄까요, 아니면 밥과 빨간 콩 소스를 줄까요?" 물어보길래 "저는 김밥으로 주세요."라고 응했다. 아이는 잠깐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그건 없어요. 하지만 밥이랑 김은 줄 수 있어요."라고 했다. 아이는 언제나 놀라움과 재미, 그 사이의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물론 계속되는 상황극에 나는 조금 지루해졌고 물, 감귤 주스까지 다 먹고 나서 겨우 아이를 설득해서 공원 들판으로 나가 누웠다.

내가 누운 위로 아이도 누웠다. 

아이가 뒤를 돌아 뽀뽀를 해주었고 웃음도 실컷 보여주었다.

언제쯤엔 아이와 노는 게 지칠 때가 분명 있다. 나는 나름 재밌는 사람이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항상 필요했던 사람이라 아이와 재밌다가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계속 움직여야 하고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시간들이 힘들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가끔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행위 중 하나인 가만히 누워있기도 같이 해주고 더불어 뽀뽀에 포옹까지 해주니 너무 행복하다. 나는 이기적인 엄마라서 이렇게 받기를 원한다. 주는 것만 하는 것은 분명 지친 것이다. 나에게는. 

아이야, 항상 너에게 말해주리라 다짐한다.

나는 너에게 주기만 하지 않았다고. 나는 너를 위해 온전히 희생하지 않았다고.

이유인즉슨, 나는 너에게 받아왔으며 너는 너로서 이미 온전하였다고. 

 

항상 불기만 하던 민들레 씨앗을 손으로 잡에 떼어내 보았다.

아이는 물결처럼 날아가던 하얀색 형체의 밑 부분에 달린 씨앗을 보았고

그것이 땅에 붙어 여기 이 노란색 민들레꽃이 된다고 하였더니

그것을 부는 것을 멈추고 떼어 땅에 붙였다.

 

아이는 크로아상이 먹고 싶다고 하였고

저녁 시간 직전이라 평소였으면 안된다고 저녁 먹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집으로 돌아갔겠지만

오늘은 못 이기는 척 나눠먹자는 조건으로 크로아상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가엔 민들레 씨가 가득했고

시간이 없을 땐 다음에 하자고 바지런히 걷던 길에서 아이는 작은 손으로 씨를 직접 따서

하나, 둘, 세 개나 후후 불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하이얀 민들레 씨가 아이의 온기로 훨훨 날아가는 걸 다 보며 천천히 걸어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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