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행복의 나라로

아파트 베란다에 눈에 확 띄는 플랜카드를 걸지를 않나

시퍼런 궁서체가 박힌 기념 수건을 만들지를 않나

어쩜 이리도 재기발랄한 방법으로 

MB 구속을 축하할 수 있는지 존경스런 마음으로 감탄하고 있다.  

그들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나는 고작 예전부터 올리고 싶었던 

(나름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노래 가사 하나를 올리며 기념하려고 한다. 

이 노래를 알게된 건 그리 오래지 않다. 

우선, 가사가 참 좋았다. 멜로디도 좋지만 나에게 이 노래의 첫인상은 단연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가사였다. 

그런데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어려운 시절에 쓴 곡'이라는 정보를 접했다.  

그러고보니 '어떻게 할거야', '어떻게 하자'라는 말이 대부분이니 편치 않은 현재에 희망적인 미래를 그렸다고 하는 것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듣자니 괜히 짠하고 밝은 느낌이 조금 반감되는 기분이었다. 전과 달리 노래가 더이상 마냥 목가적이지만은 않았다. 

노래 자체에 약간의 의미가 부여되는 효과가 생겨서 그럴까.  그래서 그런지 가사뿐만 아니라 노래 자체가 불의를 딛고 일어나고자 하는 희망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것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다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처음 이 노래가 나온 때의 뮤직비디오가 아니라 최근에 다시 찍은 뮤직비디오였다. 

한대수 뮤지션이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중간중간에 나오는 장면들이 아주 인상 깊었다. 

'히피 문화의 선두주자'답게 회색 머리에 까만색 짧은 면티셔츠, 그리고 청바지를 입고선 검정 부츠를 신은 발로 그저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잠깐 멈춰서서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나지막한 담벼락을 훑어보신다. 거기엔 형형색색 젊음과 저항의 상징인 그래피티가 그려져있다. 그 혼란스럽고 분명한 색 어딘가에는 이런 문구도 있었다. 

'Democracy is DEAD'  

다들 제각기 갈 곳을 향해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는 어느 횡단보도.  

택시기사는 손님을 태우고 나이가 지긋하신 배달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신호를 기다리신다.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은 회사원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걸 보니 점심시간인 듯 하다.

그 사이를 남들과 다를 바 없이 걸어오는 한대수님의 저 뒷편에는 '학교폭력에 상처 받는 우리 아이'라는 서울시의 서울시 보안관 공익광고가 걸려있다. 

놀이터에서는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가 양팔을 흔들며 싱그러운 춤을 추는 반면, 

번잡한 청계광장에서는 '분노하라'는 짧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사람들의 시위가 한창이다. 

다름 아닌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운동이었다. 

반값 등록금을 위한 투쟁에서도 웃음은 피어나고 촛불이 넘실대었다.

이순신 장군님이 굳세게 서있는 광화문 광장에는 '미친 등록금의 나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한 학생의 1인 시위가 용맹을 떨치고 있었다.

아, 이 멋있는 사람의 문구가 이 노래의 제목인 '행복의 나라'와 대비되어 내 기분은 이상하리만치 비참해졌다. 

이 뮤직비디오가 한결같이 보여주는 맑은 서울의 날씨 또한 내 마음을 더욱 더 아이러니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커다란 광화문 광장에 걸맞게 커다랗게 걸려있는 광고스크린에서 나오는 뉴스는 'G20 홍보포스터 쥐 그림 대학강사 유죄'

구속 전에는 소름이었지만

구속 후에는 아직 찝찝하지만 나름 희열이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손녀였던지 한대수님이 이 모든 여정을 마치고 놀이터로 돌아가 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씬은 다시 한번 등록금 시위대와 오버랩된다. 그 시위대에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하얗고 검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도 보인다. 

이렇게 된 이상 이것은 분명 슬픈 노래다. 

'80년대 자유를 갈망하던 청년들의 노래'가 지금 이 시대에 딱 들어맞는다는 건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자유를 온전히 찾지 못했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전 정권과는 확연히 다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다행히 나는 우리가 바꾼 정권 아래서 분명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 속에서 살고 있다. 

이전에는 더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기분을 걷어낼 수 없는 짜증과 한탄 속에 몇달이고 몇년이고 느껴야 했다. 

그 시절에 이 뮤직비디오를 봤다면 내 기분은 좀 더 나아졌었을까. 

여하튼 우리 사회가 지속적인 변화를, 더 큰 변화를 마다하지 않는 깡이 생겼으면 좋겠다. 

나를 향한 바람이기도 하다. 

[가사]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 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줘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고개 숙인 그대여 
눈을 떠 보세 귀도 또 기울이세 
아침에 일어나면 
다신 찾을 수 없이 
밤과 낮 구별없이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르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마지막으로 한대수 뮤지션의 최근 앨범 Crème de la Crème에 수록된 '아무것도 안보여'의 뮤직비디오를 추천한다.